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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도자기 소개

도자기의 개념과 분류
도자기는 넓은 의미에서 흙을 구워서 만든 모든 기물을 지칭하며 일반적으로 태토의 굳기에 따라 土器(토기), 도기(陶器), 석기(石器), 자기(瓷器)로 나눌 수 있다.
토기가 600~800도의 낮은 온도에서 유약을 바르지 않고 한번만 구운 것인데 반해 도기는 800~1000도 정도로 토기보다 약간 높은 온도에서 구워 비교적 단단하다. 석기는 섭씨 1100도 이상에서 소성되는 것으로 태토속의 장석이 녹아 유리질화 되어 표면이 단단하며 회청색을 띤다. 자기는 1200~1400도 정도의 높은 온도에서 구워 태토의 유리질화가 더욱 촉진되어 강도가 매우 높은 그릇을 말한다.
도자기의 발전단계
우리나라의 도자기는 신석기시대 토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토기는 여러 가지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진 빗살무늬 토기와 덧띠무늬가 있다.
청동기시대가 되면 굵은 모래가 섞인 태토를 사용하여 토기를 제작하는데 주로 무늬 가 없는 것이 이 시대 토기의 특징이다. 이후 철기시대에는 섭씨 1100도 이상에서 구워 두들겼을때 쇠소리가 나는, 석기질에 가까운 회청색 경질토기가 생산된다. 이러한 경질토기는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의 국가들이  독자적인 토기 문화를 형성하며 발전된다. 고려시대가 되면서 중국을 통해 전래된 인공적인 유약을 씌운 청자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하며 조선시대에는 고려 말 청자에서 이어진 분청사기와 백자가 주로 생산되었다.

김해지역의 분청사기

<2009년 2월 기준>
김해지역의 분청사기
요지명 수습유물 추정시기 성격
1 생림면 봉림리 청자요지 청자, 도지미 가마벽체편 14중후반 청자요지
2 상동면 대감리 분청사기요지 분청사기, 백자, 갑발, 도지미, 가마벽체편 등 15~16세기 분청사지요지
3 상동면 대감리 백자요지① 백자, 도지미, 가마벽체편 등 17세기 백자요지
4 상동면 대감리 백자요지② 백자, 도지미, 가마벽체편 등 17세기 백자요지
5 생림면 사촌리 하사촌 백자요지 백자, 도지미, 가마벽체편 등 17세기 백자요지
6 대동면 주동리 독지곡 백자요지 백자, 가마벽체편 등 조선후기 백자요지ㆍ옹기요지
7 대동면 주동리 백자요지 백자, 도지미,가마벽체편 등 17세기 백자요지
8 생림면 후포와요지 기와, 분청사기 등 15세기 와요지
9 김해 삼계동요지 토기 8~9세기 토기요지
10 김해 구산동요지 토기, 분청사기등 7세기 토기요지
11 김해 대성동와요지 기와 조선 와요지
12 김해 동상동와요지 기와, 분청사기 등 조선후기 와요지ㆍ자기요지

관련문헌

김해시는 고대로부터 역사적 유서가 깊은 지역으로서 이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도 여러 문헌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고, 그 양도 다양하고 많은 편이다. 그 중 도자기 생산과 관련된 자료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전기에 편찬된 『慶尙道地理志』(경상도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세종실록 / 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경상도속찬지리지)는 도자기의 생산체계 및 성격을 알 수 있는 기본적인 자료이다.

  • 慶尙道地理志 경상도지리지 Geography of Gyeongsang-do
  • 世宗實錄地理志 세종실록지리지Geography Section of Annals of Kings Sejong
  • 慶尙道續撰地理志 경상도속차지리지 Revised Geography of Gyeongsang-do

『경상도지리지』김해도호부 에는 김해의 토산공물이 磁器(자기)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세종실록』「지리지」와 『경상도속찬지리지』에는 도자기를 제작하던 장소인 자기소 도기소를 기록하고 있어 김해지역에 요업활동이 활발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또한 김해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 중에는 ‘金海’(김해), ‘長興庫’(장흥고) 등 글자가 새겨진 분청사기가 출토되는데 이러한 분청사기는 김해에서 제작되어 관청으로 납품되었던 공납용 자기가 생산되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으며 그 예로 하품을 생산하던 자기소로 추정되는 상동면 대감리 분청사기요지가 있다.

상동면 대감리 분청사기 가마(上東面 大甘里 粉靑沙器窯址)

대감리 분청사기 요지

상동면 대감리 분청사기 가마는 김해시 상동면 상동면사무소 뒤편 구릉사면에 요지가 위치한다. 현재는 계단식 경작과 분묘의 조성 등으로 이미 원 지형은 훼손된 상태이다.

지표에서는 다수의 자기편과 가마벽체편 등이 채집되었고 수습되는 유물 중에는 金海(김해), 長興庫(장흥고) 명 등이 새겨진 분청사기가 출토되는데 이는 이 곳에서 공납용 자기가 생산되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수습되는 유물은 다수의 분청사기와 백자편, 갑발과 도지미 등 요도구가 확인되었다. 분청사기는 초문과 삼원문 등이 상감된 것과 연권소국화문, 소국화문, 승렴문등이 인화장식된 것이 다수이다.

기종은 대접, 접시, 합뚜껑, 병 등이 확인되었고, 백자편은 대접과 접시를 중심으로 대부분 모래빚음 받침을 사용하여 포개구이 번조된 것이 다수이다.

명문 분청사기(金海·興·用)

대감리 분청사기 요지 수습품 중에 그 동안 제작지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던 金海(김해)명이 새겨진 인화 분청사기편이 발견되었고 인화분청사기편의 정교하고 질이 뛰어난 장식을 확인할 수있다.

특히 함께 수습된 다수의 백자편은 인화분청사기의 전성기가 개시되는 1430년대를 시작으로 백자 제작이 본격화되는 15~16세기 까지 이곳의 가마 운영과 제작품의 변화 등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金海(김해)명이 시문된 합뚜껑 등은 김해지역에서 상당시간 제작되었던 분청사기의 실체를 여실히드러내 준다.

김해읍성

김해읍성에서 출토된 분청사기는 접시 호, 병 등 일상용이가 대부분이며 내외면 전체에 集團連圈文(집단연권문), 小菊花文(소국화문) 등으로 印花(인화)장식을 한 대접과 접시, 원권문을 간략하게 삼감한 호, 귀얄을 두텁게 바른 편과 백토를 전면에 바르고 당초문 양으로 긁어낸 조화문 편이 확인된다.
그리고 일분 인화장식의 대접과 접시 안바닥에는 金海(김해) 명을 새겨 넣기도 하였다.

김해 읍성에서 출토된 유물

김해 구산동

구산지구는 해반천의 서쪽 구릉지대로 분성산과 마주하고 있다. 배후에 위치하여 남-북으로 길게 뻗은 경운산의 동쪽 붕적사면에 해당되는 곳으로 풍화퇴적에 의해 형성된 이 곳은 여러개의 소구릉과 소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릉말단부 부분에서 분청사기 및 백자 완.명 등의 자기류와 동기류, 철협.관정들의 철기류가 주로 출토되었다.

김해 구산동에서 출토된 유물-장흥고 명 접시, 고족배, 대접

김해 가야의 숲

김해장흥고

김해시 가야의 숲에서 발굴된 분청사기 인화 ‘김해장흥고’ 명 편이다.
이는 지부를 둥글게 만들어 놓은 내저면만 잔존한다.

내저면 중앙으로 ‘金海’(김해)를 명문으로 장식한 뒤 그 주변으로 1.5cm가량으로 집단연권문을 둘렀다.

굽 외면에 작은 동심원을 장식하여 인화장식을 하였고 그 위로 집단 연권문을 베풀었다. 집단 연권문 사이에 ‘장흥고’라는 명문을 하나씩 기외면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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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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